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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셜록 홈즈’에게 듣는 힘내라 힘 메시지, 표 창 원

경찰, 교수, 프로파일러, 방송인, 국회의원이라는 다양한 이력과 함께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그가 올해 초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무엇을 쥐어서가 아니라, 가진 것을 내려놓아서다. 인상적인 의정활동에도 불구하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오랫동안 꿈꿔온,‘한국의 셜록 홈즈’를 향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표창원 소장의 이야기, 그리고 국방에 헌신하는 대한민국 국군 장병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

  • BY. 관리자
  • 2020.08.21


나에게 군인이란멋짐그 자체다!


경찰, 교수, 프로파일러, 방송인, 국회의원이라는 다양한 이력과 함께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그가 올해 초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무엇을 쥐어서가 아니라, 가진 것을 내려놓아서다. 인상적인 의정활동에도 불구하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오랫동안 꿈꿔온,한국의 셜록 홈즈를 향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표창원 소장의 이야기, 그리고 국방에 헌신하는 대한민국 국군 장병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


/ 유성욱 진행/ 서민영 사진/ 조상철




숨가팠던 의정활동 4년을 마치며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역시 표창원답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을 것이다.?이에 대해 표창원 소장은 4년에서 그치지 않고 또 했을 경우라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것에 따라서 내가 바뀌어 가고 적응해 가고 변화해 갈 것이 너무 명확해 보였다라며 내가 나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총선 불출마를 설명한 바 있다.

이후 방송을 통해, 운동이나 요리를 즐기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으나, 그가 희망한 느린 생활이나 자유로움은 아주 잠시뿐일 것이 분명하다. 여전히 세상 많은 곳에서 그를 찾고 있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과의 인터뷰도 표창원 원장의 빡빡한 일정 속에서 어렵게 잡혔고 급하게 진행됐다. 동행한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이승아 기획실장(알고 보니 사모님이었다)TV 생방송 프로그램과 라디오 생방송 프로그램 진행이 예정되어 있어 앞으로 더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런 와중 표창원 부부가 과의 인터뷰를 승낙한 것은 결정적으로 군인들이 보는 잡지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였다고.딴 건 몰라도 이거는 합시다라고 표창원 부부가 의기투합하게 된 데는 두 사람의 군에 대한 애정 이상의 특별한 배경이 있다.?먼저, 표창원 소장의 부친이 바로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해병의 표상과도 같은 인물이었다고. 해병의 정신으로 오늘의 표창원을 만든 부친은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군대와 익숙했다는 이승아 실장 역시 군인가족으로 자랐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가 제3야전 군사령관과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했던 이남신 대장이다.

과의 인터뷰는 그런 특별한 배경과 함께 대한민국 군대, 군장병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했다.




21대 국회의원 불출마 이후의 생활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바쁘신 것 같은데, 근황을 들려주시죠?

국회의원으로서의 4년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힘들었던 이유에 관해서는 정치적 관점이 깃들어 있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자유롭고 느린 생활을 좀 해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며칠 후 JTBC 시사정보 프로그램 사건반장의 진행자로 표창원 소장이 발탁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한국의 설록 홈즈를 꿈꾸신다는 이야기가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사설 탐정이라고 하면 흥신소가 연상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포부이신지요?

한국의 셜록 홈즈라는 것을탐정이라는 이야기로 풀어내면 조금 오해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탐정이 합법적인 것은 아닙니다. 불법이지요. 그런데 원래 셜록 홈즈의 정식 직함은 컨설팅 디텍티브에요. 우리말로 하자면 자문수사관 이렇게 볼 수 있겠죠? 전문적인 추리력, 논리력, 과학수사 능력을 통해서 현장수사를 지원해주고 자문해주는 역할,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제가한국의 셜록 홈즈가 되겠다라고 하는 것은 그동안 제가 해왔던 역할, 즉 프로파일링을 통해서 경찰의 현장 수사를 도와주고 분석을 지원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교육영역에서도 추리적 사고는 필요합니다. 추리라는 도구(Tool)는 모든 사안들 수학이든, 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모든 영역들을, 주입식 암기식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흥미롭고 재미있게 학습하고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의 한 방법도 되거든요?

또 탐정은 우리 모두가 한번쯤 꿈꿨던 로망이기도 하잖아요. 탐정이 한번 되어보고 싶어, 또는 경찰관이나 수사관이 되고 싶어. 이런 생각을 가졌던 분들께서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향유하고 또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것. 방송을 통해서 대중들과 함께 과학수사와 프로파일링의 세계를 경험해 보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이 모든 영역이한국의 셜록 홈즈라는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며칠 전 오랜 기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춘재 사건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누구보다 하실 말씀이 많으실텐데요, 수사발표를 들으며 느꼈던 감회를 전해주시죠?

이춘재 사건은 대한민국 그리고 특히 경찰에게는 너무나 아픈 상처, 흉터 같은 사건이죠. 14명으로 최종 확인이 되었는데, 무고한 희생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 살인사건이기도 하구요.?특히 그 중에는 최근에서야 그 진실이 드러난 초등학생의 실종사건이 결국 이춘재의 살인으로 밝혀지며 혹시나 아직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부모님의 기대를 짓밟아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었던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발생했던 10건의 여성 살인사건. 그 피해자와 유가족 분들께 끼친 상처를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한편 경기남부지역이죠, 그쪽 피해 지역의 수많은 여성들께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을 남기기도 했지요.?또한 경찰이 초기에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참담함은 두고두고 남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건 수사 과정에서 아무 잘못 없는 분들이 억울하게 용의자로 내몰리고 가혹한 수사를 겪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까지 계시다는 것입니다.?8차 사건 같은 경우는 엉뚱한 분이 실제 범인으로 몰려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하다가 최근에야 재심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황까지 왔죠. 경찰관들도 중간에 목숨을 잃은 분들도 계십니다.

이 엄청난 비극이면서 대한민국 사회에와 경찰에 많은 숙제로 안겼던 사건의 진실이 뒤늦게나마 밝혀진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님께서 해병대 출신이셨다구요? 성장과정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까지 두 분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모님을 통해 받은 영향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평생 해병이셨습니다. 월남전에서 부상을 입으시고 전역한 이후에도해병대에서 후진을 양성하시던 특수전 교관이셨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셨구요. 작년 연말에 84세를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몸은 20대 청년의 근육을 가지고 계셨어요.?그 아버지 밑에서 저는 걷기 시작할 때부터 해병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겨울에도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를 따라서 아침 운동에 나섰지요. 울었다는 이유로 남자답지 못하다며 더 빡센 훈련과 함께 찬물로 냉수마찰 하는 경험도 했었구요.?또 제가 잘못하면 언제나 해병대식 체벌이 가해졌습니다. 푸쉬업부터 시작해서 쪼그려뛰기, 동네 한바퀴 뛰기, 그리고 빠따도 맞았구요.?그래서 동네분들께서 제가 동네를 뛰거나 체벌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 쟤가 또 어떤 잘못을 저질렀구나 알 정도였으니까요.

저희 어머니도 아버지 못지않게 강하신 분이셨습니다. 전형적인 경상도분으로 고명딸로서 상당히 자부심이 강하셨는데 한편으로는 자식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우셨지만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대단히 엄하게 꾸중하셨죠.?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저는 나중에 경찰대학 들어가서나, 전경대 군생활, 경찰관 생활을 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것 같아요. 양육과정을 통해서 대단히 강하게 키워진 그런 아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시 아버님을 기억하는 후배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존함을 지면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월남전 참전중 적의 총탄에 귀를 맞으며 전상을 입으신 참전유공자, 국가유공자로 지난해 말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신 대한민국 해병대 표상치 예비역 상사이십니다.


11녀를 두고 계신데, 선친의 그러한 교육관이 다시 자녀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건가요?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녀들에게 강조해왔던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저는 아들하고 친구같은 관계에요. 그런 관계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저의 관계가 너무 엄격한 관계, 교관과 훈련병 같은 관계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훈련 덕에 대단히 강한 사람으로 성장했지만 정을 잘 나누질 못했어요. 제가 아버지를 존경하는데 너무 아쉽고 안타깝지요. 물론 제 잘못이지요. 좀 더 다감하게 대해 드려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더 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작년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사망을 하시면서 한이 많이 남아 있구요.

그래서 저는 많은 고민 끝에 결혼을 하면서 존경받는 아버지보다 사랑받는, 친근한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그런 계획과 결심을 했습니다. 이후 저는 아들에게 이렇게 해야 된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거의 안합니다. 그냥 대화를 많이 합니다. 심적인 지지와 함께요. 그런데 결과를 보면, 제가이렇게 해야 되지 않겠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그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얘기를 하더라구요.


아드님은 뭘 하고 있는지요? 경우에 따라 껄끄러운 질문이 될 수도 있을 텐데, 혹시 입대 계획도 갖고 있는지요?

아들은 축구선수입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에서부터 계속 축구를 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영국 축구학교로 유학을 갔습니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데, 영국 프로축구 2부 리그 챔피언스리그 소속인 브렌포드FC 19세 이하 상비군에서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본인이 축구를 너무 좋아합니다. 상당히 힘들고 어려운 과정도 많았는데, 지금까지 그만 두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더라구요. 아버지로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에 해병대에 자원입대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멋진 생각이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라고 아버지로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도 많이 만나실텐데요. 지금 군 생활을 하고 있는 20대 병사들을 포함한 동시대의 청년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요?

우리 젊은 세대는 일단 기성의 틀로부터 자유롭게 느껴집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행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하는 그 창의롭고 자유로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요. 부럽기도 하구요.?제가 젊었을 때 우리 세대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언제나 짓눌려 있었어요.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아직 말할 수 없다는 그런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지요.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으면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기정사실과 같았는데, 그게 사회가 정한 질서에 도움을 준 부분도 있겠죠.

그런데 반면에 조금 더 때묻지 않았을 때, 순수했을 때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이야기들이 분출되지 못했고 그것이 권력적 군림자 이런 사람들이 맘껏 나쁜 짓을 자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기도 하며, 억압이나 폭력의 피해자들이 도움받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했지요.?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렇지 않아서,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근의 고 최숙현 선수같은 일도 벌어지긴 하지만, 그나마 상당히 용기있고 또 자유롭고 창의적인 모습들이 아주 멋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유롭고 창의적인 청춘들이 병영이라는 닫혀진 울타리에서 생활합니다. 군복 입은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은 격려나 응원의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군 경험이라는 것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회를 미리 경험하고 적응함으로써 앞으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물론 개인적으로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분명히 있지요. 어떤 정신적인 질환이 있을 수도 있구요. 군대가 과거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졌고 부드러워졌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과정에서의 특성으로 인해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지요. 그런 친구들에 대해서는 군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잘 도와줘야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그런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한다면, 병영에 있는 우리 청년들이 조금 더 군을 긍정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군대가 아니라면, 지금의 전우들을 만나지 못하잖아요. 군대가 아니라면 함께 땀 흘리고 고생하면서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주고받는 그 경험을 어디서 합니까??

청춘의 시기 다시 못할 군 경험을 가능하면 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소중한 자양분으로 삼는 그런 군생활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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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유성욱편집 유성욱